2018년 말, 책으로 출간되어 너무나 많은분께 과분한 사랑을 받았던 <도쿄의 디테일>이 숙박 큐레이션 플랫폼 ‘스테이폴리오’와 만나 재미있는 오프라인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스테이폴리오가 새롭게 서촌에 선보인 ‘한권의 서점’ 서점의 첫번째 ‘한 권’으로 <도쿄의 디테일>이 소개되고 있는 것인데요.
‘한권의 서점’은 서촌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목표로 스테이폴리오가 만든 서점입니다. 작은 공간 안에서 많은 책을 다루기보다는 매달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와 관련된 책, 책과 연관 있는 전시와 이벤트를 선보일 예정인데요. 그 영광스러운 시작으로 <도쿄의 디테일>을 선택해주셨습니다. 물론 ‘처음’이라 부담이 되기도 했고 멋진 공간의 시작에 혹시나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는 마음도 컸습니다.
그렇게 노심초사하고 있던 찰나에 들려온 기쁜 소식, 서점 오픈 10일 만에 책 1차 재고분이 모두 솔드아웃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심지어 재고가 부족해 전시되어 있는 디스플레이용 책까지 판매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제가 들렀었던 짧은 20분 동안에 2명의 손님이 책을 구매해가기도 했으니, 그 속도라면 가능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멋진 공간에서 책을 소개해주신 덕분입니다.
전시 기간의 반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한권의 서점과 함께 협업했던 내용에 대해 기록하고, 이 과정에서 어떤 점을 배우고 느꼈는지를 기록해두고자 합니다. 책 1권이 ‘전시’라는 영역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해봤고, 앞으로도 콘텐츠 창작자로 활동하면서 비슷한 일이 또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그 때, 이 기록물이 도움이 될 거고요.
# 한권의 서점 X 도쿄의 디테일, 그 시작
본업이 별도로 있다보니 남는 ‘여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블로그 글과 뉴스레터를 쓰는 것만으로도 일주일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정말 죄송하게도 여러 곳에서 제안 주시는 협업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습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경우, 아직 함께 하기에는 저의 내공이 부족한 경우, 이왕 할거면 잘해보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고민과 실행 시간이 충분치 않을 것 같은 경우 아쉬운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 기회에 제안 주신 내용에 아쉬운 말씀 드리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그럼에도 ‘한권의 서점’의 제안에는 무리를 하면서까지 꼭 해보고 싶었던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서점의 컨셉력
사실 ‘한권의 서점’ 컨셉이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컨셉은 아닙니다. 특정 기간에 딱 한 권만 팔겠다는 컨셉은 이미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 도쿄에 위치한 모리오카 서점인데요. 모리오카 서점은 일주일에 딱 한 권만 판매하며 책에 얽힌 전시, 이벤트, 강연 등으로 공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모리오카와 같은 서점을 만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었습니다. 소수 책에 집중하고 그 책과 엮인 부가 콘텐츠를 선보여 책의 확장 사례를 만들며 궁극적으로는 책의 판매까지 이어져 서점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모델, 이 모델이 실제로 워킹될 수 있는지 한국에서도 가능한 모델이지 궁금했습니다. 또한 저의 먼 미래의 꿈이 ‘서점 운영’이라는 점도 이 제안에 호기심을 갖게 된 이유였습니다.
2) 구간의 재조명
<도쿄의 디테일>은 2018년 11월에 출간된 책입니다. 출간된 지 벌써 7개월 가까이 지난 책이죠. 요즘은 한 달만 지나도 책의 생명력이 다했다고 할 정도로 출판과 소비의 호흡이 매우 빨라지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런 흐름 속에서 금세 사라져버리는 책이 많은 것이 오늘날의 출판계 현실입니다. 그리고 서점도 이런 빠른 호흡 속에서 신간을 더 구비해놓고자 구간의 비중을 최대한 줄이고 있죠.
이에 반해 ‘한권의 서점’은 구간, 신간 가리지 않습니다. 출간된 지 7개월이 지난 구간 <도쿄의 디테일>을 서점의 첫 시작 책으로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동안은 오로지 이 ‘구간’에만 집중합니다. 한 달이면 수 만권의 책이 시장에 쏟아지는데 그런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은 채 오로지 한 권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간을 다시 조명해 생명력을 불어 넣는 시도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만약 <도쿄의 디테일> 반응이 좋다면, 구간에 다시 집중했을 때 효과가 있는 거라면, 더 많은 구간이 수면 위로 다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무리를 해서라도 한권의 서점과 함께 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흔쾌히 하겠다는 답변을 드렸습니다.
3) 디테일의 확장
PUBLY에서 처음으로 <도쿄의 디테일>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우리나라에도 도쿄에서 발견한 디테일처럼 고객을 위한 소소하지만 의미있는 디테일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를 위해서는 ‘디테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필요했고 저와 비슷한 관점을 가진 분들이 주목 받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 결과, 세심하게 신경 쓴 디테일은 누군가에 의해 꼭 발견되며 이 발견이 결국 고객 감동으로 이어져 브랜드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사업을 운영하는 주체에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만 사업주 입장에서도, 디테일을 발견하는 소비자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뿌듯함을 느끼며 ‘디테일’을 챙기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거 해봐야 누가 알겠어?’ 했던 생각이 ‘어? 이걸 누군가 발견하고 주위사람들에게 공유하기도 하네?’ 생각으로 바뀐다면 이 프레임 전환의 혜택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한권의 서점’에는 도쿄의 디테일 뿐만 아니라 ‘서촌의 디테일’이 존재합니다. 서촌의 가게 3곳의 ‘디테일’을 인터뷰로 담아 서점에 함께 소개해놓았습니다. 도쿄의 디테일로 디테일 관점을 가진 관람객은 서촌의 가게를 보면서 그 곳의 디테일을 추가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점을 나선 뒤 그 곳을 직접 방문해 디테일을 찾아보는 흐름도 만들어질 수 있었죠. <도쿄의 디테일>을 쓰면서 원했던 모습이 ‘한권의 서점’을 통해 가능해진 것입니다.
# ‘한권의 서점’에는 어떤 콘텐츠로 채워졌을까?
‘한권의 서점’은 작은 공간입니다. 10명 안팎이 들어가면 꽉 차죠. 하지만 그 작은 공간을 콘텐츠로 알차게 채웠습니다. 서점을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문 옆에 놓여져 있는 ‘한 권의 책’, 바로 <도쿄의 디테일>입니다. 그 옆에는 누구든지 가져갈 수 있는 엽서가 있는데 그 엽서는 바로 서촌 가게 3곳에서 찍은 이미지로 만든 엽서입니다. 결국 도쿄의 디테일과 서촌의 디테일이 함께 놓여 있는 셈입니다.
그 이후에는 서점 벽면으로 눈길이 이동합니다. 2개 벽면이 전시용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한 쪽 벽면은 도쿄의 디테일, 한 쪽 벽면은 서촌의 디테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번 달 주제와 책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시작된 도쿄의 디테일 벽면에는 포스트잇 형태로 책에 담겨 있는 다양한 디테일 사례들이 이미지와 손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마치 책 한 권을 ‘엑기스’로 소화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큐레이터의 노트’가 붙여 있습니다. 서점 큐레이터가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어떤 것을 고민했는지 큐레이터 입장에서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요. 저도 한권의 서점에 가서야 처음으로 그 글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큐레이터의 노트가 인상 깊고 감동적이어서 여러 번 읽어보게 되었는데요.
디테일을 발견하고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지만, 제게 있는 ‘디테일’스러운 모습을 누군가의 의해 직접 듣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발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저를 발견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질 때가 간혹 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그 사람의 장점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혹시나 저를 보고도 그런 ‘발견’을 하는 분들이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스테이폴리오측과 미팅을 했었습니다. 그 때의 제 모습을 큐레이터님은 놀랍도록 ‘디테일스럽게’ 기억해주고 계셨습니다. 회의 내내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펜을 기억해주셨고, 퇴근 이후 몇 년 동안 글을 쓰고 있다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던 내용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큐레이터의 노트’에 손글씨로 정성껏 담아주셨죠. ‘디테일’이 고스란히 담긴 큐레이터의 노트를 여러번 읽게 된 이유였습니다.
전시는 ‘서촌의 디테일’로 계속 이어집니다. 도시와 가게를 ‘디테일’로 바라보는 관점에 조금은 익숙해진 방문객은 서촌 가게 3곳의 인터뷰를 보면서 ‘서촌의 디테일’을 발견합니다. 고객 발 사이즈를 제대로 측정하기 위한 고유의 피팅법을 활용하는 수제 구두 가게 ‘팔러’, 해안가 느낌을 주기 위해 메인 테이블을 아예 화강암으로 만든 와인 선술집 ‘아주로’, 질리는 음식을 지양하고자 매일 메뉴를 바꾸는 ‘공기 식당’을 접하면서 디테일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서촌의 ‘가볼만한 곳’을 득템하게 되며 서촌 나들이를 더 풍성하게 해주는 ‘로드맵’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도쿄의 디테일로 시작해서 서촌의 디테일로 끝나는 이 작은 공간이 놀랍도록 맘에 들어서 오랫동안 보고 또 봤습니다. 이런 멋진 공간에 소개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잠시 머물러 있으면서 서점에 놀러온 고객들의 표정과 말도 관찰하는 행운을 경험했습니다. “이 작가, 교토의 디테일도 쓰고 있던데?”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블로거야”처럼 저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분들도 많아서 놀라웠고 “여기서 이 책을 사게 될 줄은 몰랐네” “선물해줄테니까 먼저 읽고 나 좀 빌려줘” 하면서 책을 현장에서 바로 구매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부족한 용기에 차마 감사하다는 말씀은 못드렸지만, 모두 정말 감사했습니다.
# 마치며
‘한권의 서점’에는 그 자체적인 디테일도 있습니다. 바로 ‘책 포장’입니다. 한권의 서점에서는 책을 구매하면 서점의 브랜드 로고가 들어있는 종이로 책을 포장해줍니다. 책 표지를 오랫동안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어떤 책을 읽는지 강제로 공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는 직원이 손수 포장을 해주는데, 책 뿐만 아니라 ‘책을 아끼는 마음’까지도 함께 산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 선물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 또한 좋은 문구를 기록할 수 있는 북마크, 직접 만든 향으로 서점이 마치 ‘편집샵’ 같은 느낌을 주는 것 등 소소한 디테일도 한권의 서점을 둘러보는 재미였습니다.
서촌에 오신다면, 그리고 서촌의 디테일이 궁금하다면, 또한 도쿄의 디테일 책을 멋진 포장과 함께 득템하고 싶으시다면 한권의 서점에서 그 모든 것을 즐겨 보시실 바랍니다 🙏🏻 생각노트 블로그를 좋아하시고, 도쿄의 디테일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더욱 맘에 드실거에요. 책이 전시로, 또 전시가 동네의 재조명으로 이어지는의미있는 흐름을 맛볼 수 있는 서점, ‘한권의 서점’에서 ‘도쿄의 디테일’이었습니다.
[ 함께 해주신 고마운 분들 ]
- 스테이폴리오 : 백경훈 실장님, 완석님, 지원님
- 퍼블리 : 박소령 대표님, 소리님
- 북바이퍼블리 : 박현아 편집자님
[ 한권의 서점 inf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