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부터 매해 서울 국제 도서전을 가고 있다.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것도 좋지만 매해 달라지는 행사의 컨셉과 여러 기획 요소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대가 크다. 올해도 연초부터 2019 서울 국제 도서전 일정을 캘린더에 등록해두었고 빼놓지 않고 서울 국제 도서전에 다녀왔다. 이곳에서 느꼈던 점들을 매년 그랬던 것 처럼 블로그에 기록해두고자 한다.
2018, 2017 국제 도서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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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은 크게 A홀과 B홀로 공간이 나뉘었다. A홀에는 단행본 출판사와 잡지 유통사 등이 주로 들어와 있고 B홀에는 학습 출판사와 아시아 독립출판 섹션, 성심당, 브런치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A홀에 입구가 있다보니 A홀이 보통 메인홀로 불리는데 나에게는 B홀이 A홀보다 훨씬 메인홀 같았다.
B홀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은 ‘아시아 독립 출판’ 섹션. 전국 독립 서점 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싱가포르, 대만, 태국 등 아시아 독립 출판물도 함께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기존에 만나지 못했던 다양한 출판물을 접할 수 있었다.
독립 출판 섹션이 좋았던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개성있는 책이 많아서인 것도 있지만 책을 보여주는 ‘방식’과 ‘구성’ 자체가 매력적인 이유가 더 크다. 획일적인 모습으로 매대에 책이 놓여진 것이 아니라, 비록 작은 매대지만 그 공간을 최대한 알차게,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 하나 하나 느껴졌다. 각 서점마다 매대의 모습은 모두 달랐고 그런 재미가 결국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책을 들여놓을지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을 어떻게 매대에 구성하고 보여질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독립 서점이 대형 서점 같다면 그 곳에 올 이유가 줄어든다. 대형 서점과 차별화되어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이유 한 가지가 줄어들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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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독립 서점 매대에 눈길과 손길이 더 가는지를 기록했다. 서점을 운영하는 것이 꿈인 나로서, 순수한 고객 입장에서 경험했을 때의 리뷰가 소중하다.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를 기록해놔야 나중에 잊지 않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책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붙어 있는 책에 훨씬 눈길이 갔다. 놀랍게도 생각보다 책마다 간단한 설명을 붙여 놓은 서점은 많지 않았다. 서점과 책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고, 사람들이 몰려 있어 책을 펼쳐볼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책의 발견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책에 대한 설명이 꼭 필요한데 그런 서점이 많지 않았다.
실제로 두 번째 방문했던 도서전 마지막 날에 갔을 때는 인산 인해였다. 매대 앞은 손님으로 빼곡해서 이를 비집고 책을 펼쳐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좋은 책을 발견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로 책 표지에 붙은 책 제목과 설명을 보면서 먼발치에서 찜을 결정하고 인파가 빠진 뒤 제대로 살펴봤다. 그리고 그 책을 구매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책에 대한 설명이 없는 매대는 인파 속에서 원하는 책을 발견하기 쉽지 않아 포기한 채 돌아섰다. 즉, 책 표지 앞에 책 제목과 간단한 설명의 유무가 발견성과 구매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둘째. 마케팅 채널에 대한 소극적인 홍보가 아쉬웠다. 서울 국제 도서전은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결국 서점의 잠재적 타깃이 될 수 있는 고객을 가장 많이 모을 수 있는 몇 없는 소중한 기회다. ROI가 매우 높은 축의 서점 마케팅이 가능한 곳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마케팅 채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서점 및 출판사는 많지 않았다. 잘하는 곳이 여전히 잘하는 모양새였다. 물론 서점의 규모와 리소스에 따라 여력이 안되는 곳도 있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손님을 잡아야 하는 곳이 있다. 그 곳이 바로 서울 국제 도서전이다.
개인 작업자가 많은 독립 출판 북페어인 ‘언리미티드 에디션’와 비교해도 마케팅 채널 홍보가 미진했다. 언리미티드에서 목격한 창작자들은 관심 타깃과 어떻게든 연결되기 위해 마케팅 채널을 열심히 홍보했다. 체널을 팔로잉하면 선물이나 할인을 주는 이벤트가 거의 모든 매대에서 진행됐다.
이에 비해 국제 도서전의 독립 출판사의 마케팅 채널 홍보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꼭 잡아야할 타깃을 그냥 흘려 보내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결국 채널을 열심히 홍보하던 3곳만 새롭게 팔로잉했다. 그리고 그 3곳의 팔로워수는 도서전 이후 백 단위가 달라졌으며 그렇게 그곳은 ‘성장 모멘텀’을 만들어냈다.
셋째. 저자 사인회가 기발했다. 이 아이디어는 정말 좋았다. 이 곳에서 책을 사야하는 확실한 이유를 만들어주는 ‘판매 장치’인 셈. 대부분의 고객은 맘에 드는 책을 발견한 뒤 사진을 찍은 다음 온라인으로 주문한다. 요즘 왠만한 독립출판도 모두 ISBN이 있다보니 온라인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그래서 책만 발견한 뒤 주문은 온라인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또한 독립 서점 및 독립 출판사를 운영하는 분 중에는 작가도 겸하고 있는 분들이 많아 매대를 운영하면서 책을 구매하신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식으로 운영하면서 행사 리소스도 줄이고 있었다. 작년에는 보지 못했는데 올해는 몇 곳이 눈에 띄었다. 내년 도서전에는 더 많은 곳에서 저자 사인회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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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독립 서점 및 독립 출판사 부스 옆에 있던 아시아 독립 출판물을 둘러보면서 느낀 건 ‘실험적인 출판물’이 많았다는 점이다. 특히 독특한 형태, 판형, 제본, 종이 재질이 인상적이었다. 편지 봉투에 담긴 책도 있었고 서류 봉투 형식으로 만들어진 책도 있었다. 심지어 담뱃갑 모양으로 만들어진 출판물도 있었고, 사진을 안경에 끼우고 보는 출판물도 있었다.
이런 기발한 출판물을 보면 이런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 이런 형태로 만들었을 때 제일 매력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일지를 떠올려보게 된다. 또한 <도쿄의 디테일>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교토의 디테일> 책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도 상상해봤다. <교토의 디테일> 책에 적용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를 발견하기도 했고.
물론 이렇게 실험적인 출판물이 가능한 건 기성 출판, 상업 출판이 아닌 소량 생산을 하는 독립 출판인 탓이 크다. 하지만 섹션을 둘러보는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관심을 가진 것은 대량 생산 틀에 맞춰진 ‘기존의 책’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로 만들어진 실험적인 출판물이었다. ‘읽는 책’에서 ‘보는 책’으로 바뀌는 현재의 책 소비 트렌드에서 이런 실험적인 시도 자체가 ‘팔리는 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량 생산을 기본으로 하는 상업 출판이더라도 실험적인 시도가 점차 필요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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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브런치의 똑똑한 마케팅이 눈에 띄었다. 독립 서점 매대를 둘러보면 하나씩 세워져 있던 POP가 바로 카카오에서 만들어 놓은 POP였다. 2만원 이상 구매한 뒤 B홀 끝에서 라이언이나 어피치를 찾으면 부채를 준다는 프로모션이었다. 이 POP는 독립 서점 뿐만 아니라 기성 출판사 매대에도 꽂혀 있었다.
카카오 브런치는 올해 B홀 가장 끝 부분에 부스를 설치하고 ‘작가의 서랍’이라는 콘텐츠를 선보였다. 사실 B홀은 인기가 없는 공간이다. A홀에 입구가 있다보니 이곳까지 들어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A홀에 자리잡고 싶어하며 B홀은 홀대를 받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카카오 브런치는 B홀에 자리 잡았고 대신 사람들을 유인할 수 있는 유인책을 만들었다. 바로 각 부스에서 2만원 이상 구매하면 그 부스를 대신해서 선물을 주는 이벤트를 한 것.
그렇게 부스로 손님을 끌면서도 각 부스의 판매를 촉진시켜주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실제로 만 오천원 조금 넘게 사자 2만원을 넘기기 위해 책 한권을 더 구매하는 고객도 눈 앞에서 목격했다. 카카오 브런치가 준비한 프로모션 덕분에 각 서점의 부스 판매량이 올라가게 된 것.
해당 프로모션이 구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자 서점 부스는 적극적으로 POP를 내걸었고 결국 각 서점은 카카오 브런치 부스를 적극 홍보하는 자발적 마케터가 되었다. 이런 흐름과 구조를 만든 카카오 브런치팀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모든 부스의 판매를 촉진하는 대규모 프로모션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부스 홍보를 각 부스 운영자에게 맡긴 것. 참 똑똑하고 좋은 의미의 마케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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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출판사 중 가장 돋보이는 부스는 민음사 부스. 이번 국제 도서전의 ‘포토존’이라고 해도 – 물론, 성심당을 제외하고 –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인간 실격의 128페이지를 그대로 판넬로 옮겨 놓은 디자인이 지나가는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고 너나나도 모두 사진을 찍었다. 이번 국제 도서전의 인스타그래머블 부스는 단연코 민음사 부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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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출판사 중 북 큐레이션이 제일 빛났던 곳은 창비 부스. 각 분야별 ‘편집자 한마디’를 덧붙여서 편집자가 책을 추천하고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적어놨다. 편집자 한마디를 보다보니 부스를 한 바퀴 돌아봤고 편집자가 추천하는 책을 살펴보기도 했다. 매대에 책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발견성을 높이기 위해 ‘장치’를 마련되어 있는 것이 좋았다. 이런 북 큐레이션 콘텐츠를 더 많은 대형 출판사에서 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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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문학 자판기의 인기가 매우 높았다. 문학 자판기는 짧은 글, 긴 글 중 원하는 버튼을 누르면 그에 맞는 문학 작품의 일부가 프린트 되어 나오는 것. 게다가 올해는 운세 자판기도 새롭게 생기면서 더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프린트 되어 나오는 것을 두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인증샷’을 찍는 일이었다. ‘찍을 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행사에서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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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제 도서전 매출 1위는 단연코 성심당일 듯 싶다. 대전을 대표하는 빵집 성심당이 도서전에 들어와 브랜드 부스를 차리고 빵과 음료를 판 것. 특히 성심당의 히트 상품 ‘튀소(튀김 소보루)’는 대략 30분 이상 기다려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절찬리에 판매됐다. 도서전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부터 B홀에 이르기까지 국제 도서전 전체가 이 ‘튀소’ 냄새로 휩싸였고 심지어 튀소를 먹기 위해 도서전에 입장한 사람도 있을 정도 였다.
도서전인지 요리전인지 조금 헷갈리기는 했지만 책보다 굿즈가 더 잘 팔리는 시대에 ‘책의 부흥’을 위한 색다른 시도가 있었다는 것은 좋았다. 또한 성심당은 책을 내기도 하는 브랜드 빵집이기도 하니 도서전과의 연결고리도 있었다. 어차피 있을 도서전 안의 카페&휴식 공간을, 성심당으로 꾸며 ‘도서전’에 올 이유를 만든 것은 개인적으로 좋았다. 뭐든지 ‘팔려야’ 지속 가능성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