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리미티드 에디션( Unlimited Edition, 이하 UE) 10’을 다녀온 지 벌써 2주가 흘렀다. 빨리 블로그에 기록해야지, 했는데 갑작스럽게 바빠지게 되면서 제때 정리를 못했다. 이제서야 정리해보는 UE 10. 독립출판 북페어이자 아트북페어로 자리잡은 UE10을 다녀와서 느낀 점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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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UE가 어떤 행사인지부터 적어보고자 한다. UE는 독립서점 ‘유어마인드’가 주최하는 독립출판 북페어이자 아트북페어이다. 올해로 10년차를 맞이한 이 행사는 매년 관람객 수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2013년 5,000명, 14년 8,000명 15년 1.3만명 17년 1.8만명을 기록했고 올해에는 무려 2.2만명을 단 이틀만에 모았다. 매년 엄청난 모객 파워를 보이고 있는 것. 사실 UE를 들어보기만 했지 직접 가보지는 못했는데 이 정도의 성장세를 보이는 행사라면 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는 꼭 한번 가보기로 몇 달 전부터 달력에 표시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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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UE가 열린 곳은 서울 북서울미술관. 노원구에 위치해 있다. 사실 이 곳까지 와본 적이 없었는데 지하철 역 출구로 나오자마자 느껴진 동네 분위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북서울미술관 입구를 가기 위해서는 그 앞에 조성된 공원을 지나가야 했는데 그곳이 너무 좋았다. 마치 도쿄에 위치한 다이칸야마 T-SITE를 가기 위해 지하철 출구를 나온 뒤 한적한 동네를 지나야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자연스럽게 전시를 둘러볼 마음의 준비도 하게 되고. 이따가 다 둘러보고 나온 다음에 이 공원에서 쉬어가야지, 생각했다.
▲ 지하철 출구에서 나와 북서울미술관을 가기 위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중.
▲ 처음 와본 서울 시립 북서울미술관. 그 앞 공원의 편안함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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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를 입장하려고하니 파란색 가방 하나를 건네줬다. 사람들이 미술관 앞에서 들고 다니던 가방이 이 가방이구나 싶었다. 전시장 안에 들어가니 모두가 이 가방을 들고 다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가방에 관람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매해서 담기 시작했다.
▲ 북서울시립 미술관에 들어서면 파란 가방과 입장표를 대신하는 팔찌를 채워준다.
가방을 하나씩 나눠주니까 이상하게도 뭐라도 구매해서 담게 되었다. 여기에 뭔가를 채운 뒤 사진을 찍어 SNS에서 올리고 싶은 맘도 들었다. 관람객에 대한 배려도 돋보였다. 보통 도서전 등을 가면 짐이 많아지다보면 들고 다니기가 귀찮아서 더 이상 구매를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가방을 하나씩 나눠주니 ‘채워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많이 구매해도 관람하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적극적인 소비를 이끌어내는 ‘넛지’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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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자마자 인파에 치였다.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정말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로 관람객이 많았다. 오픈시간에 맞춰서 들어왔는데 이 정도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건너 들은 사실 하나. 오픈 하기 전부터 긴 줄이 서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외국인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UE10 후기를 찾아 보다가 한 일본인이 남긴 블로그 후기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 안에 있는 사진을 보니, 오픈 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길게 줄을 서 있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UE는 ‘핫’했다.
小出しにしていた記事もこれで終わりです…ソウルから帰ってきて怒涛のように仕事が続いて、さらに東京国際映画祭で六本木に通ってる私です…(ただの客) 映画の見過ぎで、目の痙攣が治らない~笑。今回の記事は昨
▲ 어느 일본인 관람객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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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셀러들의 판매 매대를 보면서 처음으로 발견한 건 카카오페이와 토스의 QR코드 POP였다. 그 중에서도 토스 QR코드 POP가 훨씬 많았다. 물론 카드 결제가 가능한 곳도 많았지만 1인 출판사, 창작자가 많다보니 카드 결제가 불가하고 ‘현금’ 결제만 가능한 곳이 많은 듯 했다.
▲ 판매 매대마다 놓여져있는 카카오페이와 토스의 QR POP
소비자는 얼마나 간편하게 이 결제 방법을 쓸까, 지켜봤다. 신기하게도 누구 하나 결제 방법을 상세히 판매자에게 묻는 사람이 없었다. 토스 QR 코드가 보이자 자연스럽게 토스앱을 열었고 QR 코드를 찍은 뒤 출판물에 나와 있는 가격을 입력해서 판매자에게 송금했다. 그 이후 “저 토스로 송금했어요” “OOO님 맞으신가요?”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구매와 결제가 끝났다.
▲ 토스 POP를 들고 간단하게 현장에서 결제하는 관람객 모습
과거 같았으면 지폐가 오고 갔거나 계좌 이체 등을 번거롭게 했을 텐데 이제는 QR로 간편하게 결제했다. 이를 보면서 느꼈던 건 토스앱의 성장. 토스 서비스가 “이따가 토스할게”와 같이 동사형으로 쓰이는 국민 서비스가 되면서 토스 QR POP 하나 세워두면 누구나 쉽게 결제 방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결제에서 제일 번거로운 건 구매자가 어떻게 쓰는지 묻고, 판매자가 설명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현금 거래, 카드 결제가 잘 될 수 밖에 없고 새로운 결제 방법은 잘 안되기 쉽다. 이미 어떻게 써야 하는지 서로가 잘 알고 있는 결제 방법이 결국은 승자가 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토스 서비스가 현금, 카드 거래와 동등한 반열에 올랐다는 걸 느꼈다. 토스 QR POP 하나만 보고도 1) 어떤 서비스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2) QR을 찍어 판매자의 계좌 정보를 입력하고 3) 결제 금액을 송금으로 보내며 4) 판매자에게 토스로 보냈다고 말하면 끝나는 결제 흐름. 이번 북페어는 그야말로 ‘현금이 사라진 북페어’이자 ‘토스로 결제하는 북페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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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둘러보면 느낀 건 전시와 판매가 함께 일어나는 ‘아트+커머스’ 같다는 것. 각 셀러들은 그들을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특징을 담아 판매 부스 뒤에 있는 ‘벽’을 꾸몄다. 그 벽만 보고도 셀러의 개성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관람객의 시선은 벽에 설치되어 있는 셀러의 작품을 본 뒤 자연스럽게 판매 매대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맘에 드는 아이템을 득템했다. 전시 요소를 먼저 즐기며 맘에 드는 셀러를 발견하고 이들의 창작물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 구매까지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 판매 매대 뒤에 있는 벽이 전시 공간이 되었다.
보통의 전시와 보통의 플리마켓을 보면 그 어느 하나에만 집중해있다. 전시는 전시만, 판매는 판매만, 그런 방식이었다. 하지만 UE 10을 보면서 느낀 건 그 둘을 조화롭게 잘 합쳤다는 것이다. 전시도 보면서 플리마켓도 즐길 수 있는데 인기 없기가 쉽지 않은 컨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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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셀러의 마케팅 채널은 모두 인스타그램. 시대가 확실히 변했다. 5년 전에는 네이버 블로그가 그래도 조금 보였다면, 1년 전에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그래도 조금 보였다면 이제는 인스타그램’만’ 보인다. 그야말로 ‘Only 인스타그램’ 시대다. 맘에 드는 북셀러의 명함을 받아보면 모두 인스타그램 채널이다. 심지어 현장에서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면 스티커 등의 굿즈를 주는 이벤트도 많았다.
왜 네이버 블로그와 페이스북 페이지는 크리에이터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 되었을까. 일단 네이버 블로그는 ‘공수’가 많이 든다. 포스트 형태다보니 어떻게든 줄글로 써야 하고 사진도 다수 첨부해야 예뻐보일 수 있다. 자신의 창작물을 만들기에도 바쁜 1인 크리에이터가 어느 세월에 긴 글을 쓰고 있을 수 있을까.
페이스북 역시 네이버 블로그와 마찬가지이다. 예전과 달리 페이스북에서도 ‘긴 글’이 많아지면서 사진 한 장, 한 줄 설명으로 쉽게 올리는 것이 ‘찝찝한’ 플랫폼이 되어 버렸다. 성의가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나. 게다가 문제는 어떻게 올려도 ‘예뻐보이지 않는 것’이다. 뭘 올려도 정보성 페이지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디자인에 민감한 크리에이터가 세이 굿바이를 외치는 채널이 되어 버렸다.
그에 반해 인스타그램은 단 5분만에, 예뻐보이는 뭔가를 쉽게 올릴 수 있다. 공수가 적게 드니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도 부담되지 않은 마케팅 채널이고 예뻐보이니까 나의 창작물이 더 빛나 보인다. 게다가 태그를 통해 계정을 팔로워를 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관심있는 사용자에게 보여질 수 있고 이들이 들어와 계정을 팔로잉 하면서 채널이 성장하는 재미도 느낀다. 크리에이터들의 인스타그램 사랑은 한 동안 오래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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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UE에서는 자꾸 사게 될까. 일반적인 북페어를 가면 잘 구매하지 않는 나도 5만원 어치를 샀다. SNS를 둘러보면 UE에서 산 책들을 모아놓고 인증샷을 찍은 사진이 많고 40만원을 구매했다고 말하는 관람객도 있다. 흘겨 듣긴 했지만 어느 창작자는 전시 수십 번 나가는 것보다 여기 한 번 나오는게 더 잘팔린다고 했다. 왜 사람들은 UE에서 무언가를 사게 되는 걸까.
https://twitter.com/mmm_OTS/status/1054034155548229632
오늘 언리밋 가서 인간 파도 뚫고 모셔온 것들. 올해는 책이 상당히 많았던 것 같다. 작년에는 눈 돌아갈 정도로 포스터가 넘쳐났었지! 몇 권 더 있는데 친구한테 맡겨서 지금 저것뿐이다. 어쨌든 매우 흡족하다! 파산했지만… #ue10 pic.twitter.com/HfQN8gUIOa
— 만화그리는붕붕 (@boong_d22) October 21, 2018
▲ 언리미티드 에디션 전시에서 수 십만원을 썼다는 고백(!)을 SNS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내가 생각했던 첫번째 비결은 ‘소통’이다. UE에 가서 판매 매대 앞에 서면 북셀러의 설명이 시작된다. 이 출판물은 어떤 저자가 어떤 의도와 취지로 썼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냥 둘러봤을 때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은 출판물도 설명을 듣고 다시보면 매력적으로 보인다. 책을 쓴 저자와 디자이너와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도 UE의 장점이다. 언제 이렇게 기발한 기획물을 출판한 분들과 한자리에서 또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까.
게다가 인터넷에서는 살 수 없는, 여기에서만 살 수 있는 곳이라며 ‘신의 한 수’를 날린다. 또는 몇 부 남지 않았다는 말로 마음을 움직인다. 모두 독립 출판물이기 때문에 가능한 소구다. ISBN도 없어서 온라인 서점에서는 살 수도 없는 ‘진짜’ 독립 출판물. 일명 ‘리미티드 에디션’인 셈이다. 꼭 갖고 싶은 책인데 여기 아니면 이제 못사는 건가, 동공지진이 오면서 자연스럽게 지갑을 오픈한다.
기획물을 만든 사람들과의 즐거운 소통, 어디에서나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독립 출판물의 특성 덕분에 UE를 관람한 관람객은 그렇게 구매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 무엇보다 일반 대형 서점 매대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기획물이 가득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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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기획물도 많이 발견했다. UE를 둘러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진과 구매 갈등을 겪었는지 모른다. 그만큼 재미있고 기발한 기획물이 많았다. 특히 내게 돋보였던 건 ‘시간이 만드는 기획’.
예를 들면 1년동안 퇴근길 하늘을 기록해서 만든 사진집, 2013년부터 틈틈히 계란 후라이를 할 때마다 찍었던 사진을 모아놓은 출판물, 하루 중 제일 좋았던 순간과 제일 안좋았던 순간을 사진으로 찍은 뒤 1년의 기록을 모은 책 등등. 모두 시간이 만들고, 시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거기에는 꾸준함과 성심함도 필요하다. 난 이런 기획이 좋다. 시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좋은 컨셉으로 둘러 멋진 기획물을 만드는 일, 그런 기획이 좋다.
▲ 1년간 퇴근긴 하늘을 기록한 출판물
▲ 2013년부터 틈틈이 계란 후라이 사진을 찍어 기록한 출판물.
▲ 하루의 가장 좋은일(Best)와 가장 안 좋은일(Worst)를 사진으로 기록한 출판물
일상을 살짝 비틀어서 기획물로 만든 사례도 있었다. 요리책인데 통조림으로 만드는 요리책이라든지, 쓰레기를 활용해 계간지와 굿즈를 만드는 사례라든지. 오로지 침대 밑에서 옮긴 글이라든지.
▲ 통조림을 활용한 요리책
▲ 버려진 전단지와 인쇄물 등을 표지의 간지로 만든 출판물.
▲ 침대 맡에서 옮긴 말들.
그 밖에도 작은 부분을 아카이빙 해서 보여주는 출판물도 돋보였다. 숨어 있는 공원을 찾아 소개해주는 ‘숨은 공원 찾기’, 서울의 포장마차를 소개해주는 ‘포장마차 서울’, 도시에서 마주친 쇼핑 카트를 사진으로 기록한 ‘카트 CART’, 도쿄의 지하철을 타보고 느낀 점을 적은 ‘도쿄, 13개의 선’이 대표적이었다.
▲ 도시 곳곳의 숨어있는 공원을 조명한 출판물
▲ 서울의 포장마차를 기록한 책
▲ 도시 곳곳에서 발견한 쇼핑 카트를 사진으로 기록한 책
▲ 도쿄의 지하철을 타면서 들었던 생각을 기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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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구매한 것을 소개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째는 도쿄 여행기. 2016년 5월 22일부터 26일까지 4박 5일동안 도쿄를 여행하면서 여행에서 느꼈던 점을 넘버링을 붙여가면서 그림과 함께 적어 놓은 글. 한 꼭지는 100자 내외의 짧은 글이다. 그야말로 ‘단상’ 집이다. 도쿄를 여행해본 사람으로서 내가 느꼈던 것과 다른 어떤 점을 저자가 느꼈는지 궁금해서 구매하게 되었다. 책 안에 들어있는 그림도 너무 귀여웠고.
또 다른 출판물은 ‘Achim’이다. 이 역시 도쿄와 관련된 출판물. 도쿄여행 아침 먹기 좋은 식당, 아침에 하면 좋은 것들을 소개한 출판물이다. 여러 도시가 있었지만 역시나 도쿄를 택했다. 보통 도쿄 여행을 가면 아침은 간단하게 전날에 산 빵 등으로 숙소에서 때우고 나오는데 다음 번 도쿄 여행때는 아침도 제대로 한번 챙겨먹어봐야겠다는 생각
마지막 아이템은 FINGERPRINT 잡지다. 그 중에서도 PEN편. 펜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일 좋아하는 물건 중 하나다. 값이 그렇게 비싸지도 않으면서 뭔가 갖고 있으면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느낌. 늘 맘에 드는 펜 앞에서는 지갑을 여는 편인데 오로지 ‘펜’만 집중적으로 들여다 본 출판물이 있어 구매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너무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참고 참아서 위의 세 아이템만 가지고 왔다. 집에와서 읽다보니 일반 도서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느껴져서 좋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사올 걸 그랬다. 내년 UE11때는 사고 싶은 것 모두 다 사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