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을 팔아라』 북 큐레이션을 준비하면서

블로그는 혼자의 기록입니다. 혼자 소재를 찾고 글을 쓰고 발행을 합니다. 그렇게 끝나는 블로그와 달리 누군가와 협업을 해서 결과물을 창작할 수 있는 기회는 더없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가급적 ‘협업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우선은 긍정적으로 생각 해본 뒤 결정을 내리는 편입니다.

PUBLY에서 처음 선보였던 <도쿄의 디테일>도 감사한 기회 덕분에 독자분께 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맘 속으로 할지 말지 계속 고민을 했을 때도 이런 기회가 내게 또 있을까 그런 생각에 뒤집었습니다. 물론 프로젝트 펀딩 내내 조마거렸고 원고를 쓰는 내내 머리를 쥐어 뜯었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을 담았던 콘텐츠가 ‘PUBLY와의 협업에서 느끼고 있는 점 01/02/03’ 이었고요.

▲PUBLY <도쿄의 디테일> 리포트 협업 당시 느꼈던 점을 기록했던 포스트

<도쿄의 디테일> 리포트의 여운이 사라질 무렵 ‘기회’가 다시 왔습니다. PUBLY에서 CCO로 계시는 안나님께 받은 메일이 시작이었습니다. “[PUBLY] OOO 님께 – Book curated by PUBLY 프로젝트 협업 제안 (맥락을 팔아라)” 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메일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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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님이 주셨던 book curated by PUBLY 제안 메일

주 내용은 PUBLY에서 새로 선보일 Book curated by PUBLY의 콘텐츠 협업 제안이었습니다. 기존의 책을 큐레이터 관점에서 재구성한 뒤 재편집하여 선보이는 멤버십 전용 콘텐츠였습니다.  새로운 기획과 실험에 동참할 수 있도록 제안과 기회에 주신 점에 감사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PUBLY 리포트의 제안 당시보다 더 걱정이 앞섰습니다. PUBLY 리포트는 결과물을 익히 봐왔기에 어떤 결, 포맷, 구성으로 만들어야 할 지 머리속에 어느 정도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만들면 되겠구나’ 상상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제안은 PUBLY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콘텐츠였습니다. 제안을 받을 당시에는 발행되어 있는 book curated by PUBLY 콘텐츠가 전혀 없었습니다. 안나님의 충분하고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콘텐츠로 만들어야 할지 스스로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죄송하게도 흔쾌히 제안을 수락하지 못한 채 안나님께 고민의 시간을 부탁드렸습니다. 결정을 말씀드리기로 한 날까지 고민은 계속되었지만 확신은 여전히 없었습니다. 하지만 <도쿄의 디테일> 로 고민을 할 때와 같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런 기회가 나에게 또 올까’

그래서 어떻게 만들어야 될지 여전히 감을 잡지 못했지만 우선은 해보겠다는 자신 만만한(!) 회신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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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고민 끝에 book curated by PUBLY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고 회신을드렸다.

# 어떤 고민이 들었을까?

프로젝트를 하면서 들었던 고민을 개인적 목적으로 적어보고자 합니다. 프로젝트 과정을 담고 프로젝트 준비 당시 어떤 고민을 했는지 스스로 기록해놓기 위함입니다. 다음 번 비슷한 프로젝트를 하게 될 때 참고하기 위한 목적도 있고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도쿄의 디테일> 당시 협업 과정을 적었던 포스트를 다시 살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죠.

북 큐레이션 콘텐츠에 대한 고민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고민 하나, 책을 재편집/재구성해서 보여드리면 독자 입장에서는 이 책을 소화했다고 생각 할 수 있을까. book curated by PUBLY는 한 권의 책을 큐레이터의 관점으로 재편집, 재구성 하는 콘텐츠입니다. 재편집한 콘텐츠일지라도 유기적, 논리적 흐름을 살려, 독자가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도록 콘텐츠를 제공해야 했죠. 그렇기 위해서는 책 내용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선택하고 압축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고민 둘, 발췌를 한다고 해서 나의 시선이 잘 드러날까. 다른 book curated by PUBLY 큐레이터와 달리 저는 익명으로 북 큐레이션을 진행할 계획이었습니다. 저자의 업력과 경력은 큐레이터의 관점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저자 소개가 결국은 큐레이터의 관점이고 그 저자가 발췌한 내용이 업의 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익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제가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어요’ 라고 했을 때 독자분들이 제 고유의 관점을 느낄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고민 셋, 리포트를 보고 나서 책을 구매하고 싶은 생각이 들까. 이 기획이 좋았던 이유는 책의 발견성을 돕고 책의 생명력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큐레이션을 한 <맥락을 팔아라> 책은 베스트 셀러로 지금도 여전히 잘 판매되고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이 출간 당시와 비교하면 책의 판매 화력은 빠르게 잃고 맙니다. 특히 출간 1개월 내 관심을 받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책이라 할지라도 재기의 기회 없이 외면 당하고 맙니다.

종이책의 일부를 발췌해 디지털 리포트로 만들어 책의 2차 저작물 레퍼런스를 만들고, 책의 발견성을 높이며 생명력을 늘리는 일이 이 프로젝트의 의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제욕심일지 모르겠지만 제 큐레이션을 본 뒤 발췌가 안된 나머지 부분이 궁금해서 책을 구매하는 분이 생긴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영향이 큐레이터가 누리는 최고의 행복이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죠.

# 독자라면 어떤 북 큐레이션을 원할까?

많고 깊었던 고민의 종착점은 결국 ‘독자’에게 있는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뻔한 결론일 수 있지만 결국 콘텐츠는 독자의 소비재고, 의도적인 결론을 내려서 컨텐츠를 제작하면 이는 ‘공급자적 마인드’ 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고민 해결이 명쾌하고 의미 있다 할지라도 아무도 읽지 않으면 ‘콘텐츠’라 할 수 없죠. 그래서 위의 고민들을 기반으로 상상해봤습니다.

‘내가 독자라면 어떤 북 큐레이션을 기대할까?’

제가 관심있게 보는 누군가가 북 큐레이션을 해준다면 저는 어떤 문장에 밑줄을 그었고, 어떤 생각을 떠올렸는지가 제일 궁금할 것 같았습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에 같은 밑줄이 그어져 있는지, 제가 떠올렸던 생각과 큐레이터의 생각이 어떻게 다를지 비교해보는 재미를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책의 밑줄과 메모는 책을 읽은 큐레이터의 관점 그 자체입니다. 밑줄과 메모는 독서에 온전히 시간을 투자해야 가능하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입니다. 관찰을 의식하지 않으니 당연히 읽는 사람의 관점이 그대로 반영될 수 밖에 없습니다. 존경하는 분이 밑줄과 메모 하며 읽었던 책을 정중하게 부탁드리며 얻었을 때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보며 이 분의 관점 그대로를 볼 수 있겠구나’

그래서 제가 큐레이션하는 콘텐츠에서는 제가 그었던 밑줄, 읽으면서 메모했던 내용을 ‘그대로’ 보여드리고자 했습니다. 익명성이 전달하기 힘든 큐레이터의 관점을 최대한 밑줄과 메모에 담아 보고자 했습니다. 거기에 제가 알고 있는 사례와 다른 맥락을 더해 큐레이션 콘텐츠의 매력도를 높이고 마치 참고서와 같은 역할이 되길 바랬습니다. 그렇게 방향은 정해졌고 안나님의 동의 하에 큐레이션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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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고 방향성에 대한 고민 결과물을 안나님께 메일로 공유드렸고 감사하게도 안나님은 원고 방향성에 동의해주셨다.

# 큐레이션의 과정

방향을 정한 뒤 안나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맥락을 팔아라>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의 앞 부분을 읽으면서 왜 안나님이 이 책의 큐레이션을 제게 제안했는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블로그를 통해 ‘왜’와 ‘어떻게’ 질문을 던지면서 브랜드와 트렌드 사례를 살펴왔습니다. 무엇을 했는지보다는 왜, 어떻게 했는지에 주목했습니다. 이 책은 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사례의 맥락을 파악해보는 책이었습니다. 3명의 저자가 고른 사례에는 새로운 기획이 가득했고 업력으로 파악한 맥락에서 분석이 담겼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책의 다양한 사례에 푹 빠지게 되었고 읽는 것마다 맘에 드는 사례를 어떻게 요약하면 좋을지 고민이 슬슬 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되는 문장에는 밑줄을 그었고 떠오르는 생각은 메모로 남겼습니다. 그렇게 한 페이지씩 넘겨 갔고 어느덧 책 한 권을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들었던 생각은 예상했던 개운함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좋아보이는 이 사례를 어떻게 재구성하지 막막함이 몰려왔습니다.

제 기준에는 모든 사례가 맘에 들었습니다. 사례마다 맥락이 있었고 그 안에서 배울 점도 분명했습니다. 내 기준으로 담지 못한 사례에서 다른 누군가는 큰 영감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중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고 그 과정이 선행되어야 ‘큐레이션’의 엣지가 살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필통 안 노란색 형광펜을 집어든 채 책 처음부터 다시 살펴봤습니다. 밑줄과 메모로 이야기가 풍부해진 섹션을 중심으로 형광펜 표시를 했습니다. 원고 작업을 하던 구글 닥스 파일에 해당 섹션의 원문을 옮겨 왔습니다. 그리고 책에 밑줄을 그었던 부분과 매칭하여 노란색 음영을 넣었습니다 – 퍼블리 리포트에서는 볼드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은 본문 아래에 별도로 정리했고 함께 볼만한 자료 링크도 추가했습니다. – 퍼블리 리포트에서는 ‘생각노트의 메모’ 라고 쓰여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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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면서 공감되었던 문장에는 밑줄을 그었고, 떠올랐던 생각은 메모했다. 이후 큐레이션을 위해 형광펜으로 선보일 콘텐츠를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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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및 책의 밑줄과 메모를 구글 닥스에 옮겼다. 밑줄은 노란색 음영으로 표시했고 그 밑에는 책의 메모를 적었다. 함께 볼만한 자료도 링크와 함께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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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 닥스에서 퍼블리의 편집 시스템(COW)으로 에디터님께서 옮겨주셨고 독자분께는 위와 같은 화면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메모 부분에는 ‘생각노트의 메모’라고 표기해 책에 적었던 메모 부분임을 강조했다.

그렇게 하나 하나 책의 사례를 옮겨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함께 보면 좋을 법한 부가 자료도 첨부했습니다. 기존에 제가 알고 있던 사례나 책에 나온 사례를 더 깊이 파보면서 알게 된 사례였습니다. 제게도 큰 도움이 됐듯이 독자분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내용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정리된 큐레이션의 마지막 커서는 구글 닥스 기준으로 100 페이지를 훌쩍 넘어갔습니다.

양이 조금 많은게 아닐까 싶었는데 역시나 안나님께서 큐레이션 양을 조금 더 줄여줄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말씀주셨습니다. 선택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보석 안에서 포기해야 할 것을 또다시 담으려니 선택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심사 숙고 끝에 고르고 골라 다시 한번 재구성을 했고 지금의 <맥락을 팔아라> 목차가 갖추어 졌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에디팅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급하게 내용을 적어 내려가기에 바빠 신경 쓰지 못했던 글맛이 에디터님의 수정을 거쳐 표현되게 되었습니다. 틀린 어법이나 표현 등에 대해서도 수정이 되었고요. <도쿄의 디테일> 때와 같이 ‘변경사항 내역’을 통해 제 글이 어떻게 좋은 글로 바뀌는지 한 차례 더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후 최종 데스크 역할은 안나님께서 해주셨습니다. 목차 분배부터 시작해서 콘텐츠 내 이슈가 될 만한 부분을 꼽아주셨습니다. 지난 번 <도쿄의 디테일> 리포트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점이기도 하지만 퍼블리와의 협업에서는 늘 ‘트리플 체크’가 진행됩니다. 저자가 글을 쓰면서 첫째로 확인을 하고 에디터가 한 번 더 더블 체크를 한 뒤 최종적으로 데스크에서 최종 검수를 거칩니다. 하나의 글을 총 3명의 눈으로 보니 그만큼 염려되는 이슈는 줄어들고 더 좋은 퀄리티의 글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프로세스와 시스템 덕분에 저자 입장에서는 조금은 걱정을 덜고 글을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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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밑줄과 메모를 옮기며 에디팅과 데스크 검수를 거쳐 <맥락을 팔아라> book curated by PUBLY 콘텐츠가 발행되게 되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의 고민이 많았을 수도 있고 밑줄과 메모를 옮기면서 원문과 저자의 해석을 해치는 것은 아닐지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큐레이션을 뾰족하게 살리고 독자분께 도움이 될 수 있는 큐레이션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읽으시다가 지나친 주관적 관점에 불편하신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

유료 텍스트 콘텐츠 실험으로 화제가 된 PUBLY에서 또 다시 협업을 하면서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간 날짜와 멀어질수록 빠르게 생명력을 잃어가는 출판계의 구조적 문제 속에서, 책을 가공하여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를 선보이게 되었다는 사실에 큰 뿌듯함을 느낍니다. 종이책을 읽은 독자가 같은 책을 재편집하여 만든 디지털 콘텐츠를 읽으면서 비교의 재미를 느끼고, 디지털 리포트를 읽은 독자가 책이 더 궁금하여 종이책을 찾는 흐름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맥락을 팔아라> 콘텐츠 (아래 링크)는 PUBLY 멤버십 사용자분에 한해 열람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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