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을 받으면서 들었던 생각들

1

오전 7시까지 병원으로 가야했다. 해마다 받는 건강 검진이 있는 날.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는 건 성공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안해 맞춘 알람 3개가 유효했다. 눈은 계속 감은 채 씻는둥 마는둥 나갈 준비를 했다. 검진 시간은 왜 이렇게 일찍 잡았는지 투덜 대면서도 챙길 건 다 챙겼다. 그러고보니 건강 검진 받으러 갈 때 들었던 생각이다. 매해 불평하고 매번 까먹는다.

6시쯤 집을 나왔다. 이렇게 아침 일찍 어딘가를 가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여행 가는 날, 오전 일찍 비행기 타러 인천공항 갈 때를 제외하고는 드문 일이다. 새벽 공기는 열대야 때문에 여전히 더웠고 새벽 공기 신선하다는 말은 옛말이구나 했다. 우리나라도 동남아시아 다 됐다.

평일이라 직장인과 출근길이 겹칠까 버스를 기다리면서 걱정했다. 서울의 직장인이라면 알겠지만 출근길 버스는 지옥철 그 이상이다. 버스 안은 사람으로 가득찬다. 누구 하나 뱉고 출발 하려는 버스와 그런 버스에 나까지 한번 타보겠다는 승객과의 대치가 아침마다 일어난다. 생존 전쟁이 따로 없다. 심지어 가득 찬 버스에 올라서보지도 못한 채 몇 대를 보낸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시계만 쳐다보며 초조해진다.

다행히도 6시는 출근하기에도 이른 시간인가 보다. 단말기에 카드 찍는 소리가 버스 안에 퍼질 정도로 버스는 휑했다. 빈 자리에 앉아 에어컨을 만지작 거렸다. 더위가 식혀지니 창 밖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하는 분이 많다. 아침 일찍 식당 문을 열고 식사를 대접하는 곳, 새로 들어온 과일을 가게로 옮기고 있는 청과 가게 주인, 아침 운동을 하는 부부까지 다른 사람보다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하는 분들이 보였다.

그러면서 ‘아침 시간’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7시 30분쯤 일어나 회사 갈 준비를 하고 아침 영어를 20분간 한다. 수업이 끝나면 짐을 챙기고 출근길을 나선다. 그게 내 아침의 전부다. 그렇다고 밤 늦게까지 많은 것을 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밤잠이 많아서 11시가 넘어가면 피곤하네 생각이 들고 12시 가까이 되면 자야겠다 생각이 든다. 결국은 밤에도 뭐 하나, 아침에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밤보다는 아침에 더 효율이 높다는 것은 인생의 경험으로 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난 밤보다 아침이 무언가를 하기에 더 집중되는 시간이다. 알고 있지만 늘 피곤과 잠에 우선순위가 밀린다. 이 시간을 살려봐야겠다는 생각은 매해 들지만 흐지부지 되기 십상이었다. 운동을 하든, 책을 1시간 읽든 계획을 세워야 겠다는 생각이 버스 안에서 들었다. 가장 좋은 실천법은 주위에 소문 내는 것. 효율적인 아침을 위한 계획을 조만간 블로그에 써보려 한다.

2

병원에 도착하고 검진이 시작되면서 나는 하나의 바코드로 치환됐다. 검사를 위해 발급된 바코드다. 30곳 가까운 검사 섹션을 바코드 하나로 인식되고 옮겨다녔다. 섹션에 도착하면 바코드를 찍어 나를 인식하고, 그 바코드에 검진 결과가 담겼다. 그렇게 섹션을 돌아다니며 나는 바코드로 3시간을 보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검진 환자인가, 상품인가, 하는 그런 생각. 필요한 생산 공정을 빠지지 않고 거쳐 가기 위한 ‘상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병원 입장에서 우리는 검진 환자가 아닌 상품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병원 브로셔에 있는 다양한 검진 상품이 어쩌면 이곳의 검진 환자를 의미한다. 20만원짜리 기본형을 택하면 20만원짜리 상품이 되고, 50만원짜리 고급형을 선택하면 고급 상품이 되는 식이다.

비쌀 수록 비싼 대접을 받는다. 비싼 제품일 수록 더 많은 공정에서 까다롭게 상품을 살펴보고 이상 유무를 판단하는 것처럼 여기도 그렇다. 하나의 바코드로 3시간을 살아보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하나의 상품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늘 내 바코드의 가격은 얼마일까?

3

건강 검진은 전형적인 ‘서비스업’ 중 하나다. 친절할 수록 좋은 평가를 받고 재방문율이 높아진다. 친절한 병원이 되기 위해 병원 스스로 자정적인 노력도 한다. 고객에게 웃으며 응대하기 위해 ‘스마일 배지’를 차고 있는가 하면  ‘항상 친절과 웃음으로 고객님을 맞겠습니다’ 같은 현수막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친절한 병원, 당연히 좋다. 친절한 서비스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문제는 이런 친절을 ‘이용’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과도한 대접과 친절을 꼭 받고 가야야겠다는 ‘다짐’을 한 환자들이 꼭 몇 있다. 이들은 자신이 지불한 금액만큼의 대접을 이 시간에 누려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혹시나 나에게 불친절한 순간이 없는지 날을 세우고 직원의 행동을 주시한다.

환자와 고객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이 느껴졌다. 까딱 잘못하면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주고 받는 것처럼 말이다. 작은 실수 하나가 큰 갈등으로 번지지 않을까 지켜보는 내가 다 노심초사했다. 고객은 철저한 갑이고 직원은 철저한 을이었다. 직원에게는 충분히 고객에게 친절할 용의가 있으며, 고객 역시 직원의 배려를 감사히 여기는 상호 긍정적 관계는 이곳에 없었다.

검진하면서 외국인 고객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 고객과 ‘직원의 친절’을 대하는 자세가 달랐다. 검진을 하다 보면 간호사 분들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검사를 위해 의도치하게 검진 환자의 신체를 접촉해야 하고 올바른 검사를 위해 친절히 설명하면서도 안전을 챙겨야 한다. 하루에 몇 백명 몰려드는 병원에서 매 환자를 이렇게 대한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내가 건강한지 살펴주기 위한 고마운 분들이다. 궂은 일도 마다하고 나의 몸 상태를 살펴준다. 그래서일까. 외국 환자들은 검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한결같이 ‘Thank You’를 외쳤다. 직원도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에 반해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말하고 나오는 우리나라 고객은 아무도 없었다. 내 돈 내고 검사 받는데 감사합니다까지는 무슨, 이런 느낌이었달까.

환자의 마음도 이해 안되는 것은 아니다. 검사 가운만 입은 채 검사를 받으러 돌아다니다보니 신체적 허점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기에 예민 지수가 높다. 게다가 검사 결과에 혹시나 문제가 있진 않을지 걱정하는 것도 한 몫 한다. 그렇지만 그 예민함을 직원에게 풀어서는 안된다. 직원은 자신의 역할(Role)을 수행하기 위한 사람이지 심리 상담원이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 우리는 친절해져야 할까. 분명 ‘갑질’을 하는 환자도 어디에서는 ‘을’일 수 있다.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를 ‘화려한 대접’으로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악순환이다. 을의 비애를 갑질로 푸는 것. 가장 좋은 점은 동등한 관계다. 갑질이 가능한 위치에 있더라도 ‘이 직원은 나를 위해 고생해 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좋은 관계가 유지 될 수 있다. 그렇게 상대방을 생각하면 그 직원 역시 어딘가의 손님으로 가서 같은 방식으로 직원을 대해주지 않을까.

4

검사 섹션을 돌아다니다보니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입은 검진복과 다른 색의 검진복을 입은 검진자가 있다는 것. 그 환자 곁에는 검진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따라다니며 모시는 직원까지 있었다. VIP 환자다. 같은 공간에 있으나 ‘급’이 다르다는 걸 공기로 느껴졌다. 검진복에서, 수행 직원에서, 검진 순서까지 모두 피부에 와 닿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모든 직원은 더 깍듯했고 모든 대기 환자를 앞질러 가장 먼저 검진을 받는 특혜를 누렸다.

어딜 가나 VIP가 있길 마련인데 새삼스럽게 느껴졌던 건 ‘검진복’으로 신분을 나눠 누가봐도 저 사람은 VIP, 저 사람은 일반인으로 표식화 되는 것 때문이었다. 모든 직원이 놓치지 않고 VIP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은 이해되지만 같은 공간에서 ‘옷’ 하나로 신분이 나뉘어 위화감과 열등감이 오고 갈 수 있다는 것을 평소엔 알지 못했다. 검진이 끝난 뒤 검진복을 벗어 반납할 때는 신분 해방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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