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지 넘어가는 것이 아쉬운 책이 있다. 이런 책을 접하는 건 흔치 않은데 <쓰기의 말들> 책이 그랬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글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글이었다. 늘상 블로그에 혼자 글을 쓰고 혼자 살펴보다 혼자 발행한다. 글을 빠르게 쓰는 것은 늘었을지 모르지만 글쓰는 ‘실력’이 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효율은 올랐지만 기술적 유효성이 늘었는지는 확신이 없다.

PUBLY <도쿄의 디테일> 작업을 할 때 좋았던 건 누군가 내 글을 살펴주고 교정과 편집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구글 문서로 원고 작업을 했는데 편집이 완료된 글의 ‘변경 사항 보기’를 눌러보며 내 표현이 어떻게 수정됐는지 살펴봤다. 그러면서 배웠다. 내가 복수형을 많이 쓰는구나, ‘~에 대한’ 표현을 많이 쓰는구나, ‘~것 같습니다’ 같은 불확실한 어미를 사용하는구나. 하나씩 기록했고 여러 번 복기했다. 글에 바로 반영되는데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쓰기’와 관련된 누군가의 ‘말’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책 제목이 <쓰기의 말들>이다. 가슴에 와닿는 말로 시작하는 각각의 단편은 작가 개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글쓰기와 관련된 개인적 경험,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학인의 이야기, 딸과 고양이 이야기까지. 명언에서 시작해서 개인 이야기로 닫히는 단편적인 구조가 인상깊었다.

<쓰기의 말들>은 깔끔하다. 군더더기 없는 언어의 경제성을 보여준다. 어디 하나 버릴 표현이 없다. 단어와 문장이 모두 제각각 쓰임을 다하고 있다. 간단한 문장으로 복잡한 상황을 쉽게 설명한다. 감정의 흐름도 담았다. 신기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내 경우에는 복잡한 상황에는 늘 복잡한 설명이 필요했다. 한번 늘어난 문장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고 그것이 나의 문체가 되었다.  독자에게 잘 설명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설명에 설명을 붙였다. 그렇게 문장은 늘어났고, 주어와 동사는 꼬이기 시작했다. 내 문체에 사족이 많다는 걸 이책을 보고 알게되었다.

작가는 맘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수집한다고 했다. 책으로 나왔던 <문장 수집 생활>과 비슷한 맥락이다. 좋은 문장을 쓰는 사람은 좋은 문장을 담는다. 탐나는 문장을 내 문장으로 만들어보려는 노력. 이 책을 시작으로 나도 좋은 문장을 담아 보려한다. 담아 놓고 보니 평소에 안 쓰던 명사와 동사가 꽤 많다. 낯선 표현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나 보다.

아래는 <쓰기의 말들>을 보면서 담았던 문장이다. 따라 만들고 싶은 문장도 있고, 공감 했던 문장도 섞여 있다.

1
하자 없는 글을 완제품으로 발주처에 납품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2
글쓰기는 나만의 속도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완전한 수단이고, 욕하거나 탓하지 않고 한 사람을 이해하는 괜찮은 방법이었다.

3
글 쓰는 에너지를 회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글 쓰는 것

4
성적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아서 안도한다는 게 아니라, 삶은 성적이나 취직 같은 한두 가지 변수로 좋아지거나 나빠질만큼 단순하거나 만만하지 않다는 것, 부단한 사건의 이행 과정이지 고정된 문서의 취득 수집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5
글쓰기에 투신할 최소 시간 확보하기. 글을 쓰고 싶다는 이들에게 일상의 구조 조정을 권한다. 회사 다니면서 돈도 벌고 친구 마난서 술도 마시고 드라마도 보고 잠도 푹 자고 글도 쓰기는 웬만해선 어렵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그 손으로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

6
예전에 한옥 전문가에게 들었다. 그 집이 좋은 집인지 알려면 사계절을 나 보아야 한다고. 외풍이 심하지 않은지, 대청마루에 비가 들이치지는 않는지, 해가 어디까지 드는지, 눈이 내리면 얼마큼 쌓이는지, 일상을 살피며 집을 알아 가라는 뜻이다.

7
글에서 첫마디가 길흉을 좌우하는 수가 많다. 너무 덤비지 말 것이다. 너무 긴장하지 말 것이다. 기히 하려 하지 말고 평범하면 된다.

8
먼저 인용한 시를 걷어 냈다. 본문 내용과 어울리는 시 한 구절만 남겼다. ‘말하자면’, ‘그러니까’, ‘모두’, ‘다 함께’, ‘~을 가지고’, ‘~에 관하여’, ‘의’, ‘도’, ‘들’ 같이 별다른 역할이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단어, 부사, 조사를 삭제했다. 단체의 설립 목적과 주요 활동은 질의 응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원고량이 삼분의 이로 줄었고 주제가 보였다.

9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10
24시간 밀착 감응과 보호 관찰의 말에서 나는 딸아이의 고양이 사랑을 읽는다. 그 독자적인 안목과 문체는 평범한 고양이가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사랑이라는 낱말을 쓰지 않고 사랑을 표현한다.

11
기자의 시각도 취재한 만큼 정교해지고 작가의 이야기는 취재한 만큼 풍부해진다.

12
감각적인 글발보다 탄탄한 자료가 글쓰기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13
사람과 책과 간간이 들리는 커피 머신의 소음에 몸이 나태로 빠져든다.

14
자기 자신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자기만의 운동으로 삼으라.

15
“아이들은 사회적 표정이 없어요. 돈을 안 벌어도 되잖아요.”

16
문체란,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 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어색함이다.

17
이해관계로 얽힌 경쟁 사회에서 슬픔 말하기는 금기다.

18
글에서 보여 주어야 할 것은 ‘주제와 관련된 상황’의 구체성이다. ‘어제 카페에서 하루 종일 만화책을 읽었다’가 아니라 ‘창이 넓은 2층 카페에서 만화 <레드로자>를 읽었다’가 좋다.

19
‘나의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다’와 ‘나는 알코올 중독자의 배우자다’는 같은 내용 다른 표현이다. 남편보다 배우자라는 단어의 차가운 느낌이 글의 정조를 살려 낸다.

20
근래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 문장은 진도 팽목항에 걸린 세월호 유가족의 표어다. “그동안 가난했으나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21
표현’력’은 단어와 단어를 연결 짓는 힘이다. 어떻게 소박한 낱말을 잇대어 정확한 감정과 사실을 견인할 것인가.

22
내 몸-글이 이미 어떤 방향으로 굳어진 건가. 변용할 수 없는 힘은 힘이 아니라 했거늘. 쓸수록 나아지지만 쓰면서 잃어 가기도 하는 게 글이다.

23
연민이 내 삶을 파괴하지 않을 정도로만 남을 걱정하는 기술이라면 공감은 내 삶을 던져 타인의 고통과 함께하는 삶의 태도다.

24
나쁜 글이란 무엇을 썼는지 알 수 없는 글, 알 수는 있어도 재미가 없는 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만 쓴 글, 자기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이나 행동을 흉내 낸 글, 마음에도 없는 것을 쓴 글,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쓴 글, 읽어서 얻을 만한 내용이 없는 글, 곧 가치가 없는 글, 재주 있게 멋지게 썼구나 싶은데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없는 글이다.

25
창작이 곧 삶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때로는 창작이 삶을 되찾는 방법이다.

26
결핌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27
“인생은 미친 짓의 기억으로 위대해진다.”

28
간결함이란 말해야 할 것을 적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야 할 것 이상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29
특히 언어의 경제성이 탐난다. 문장의 길이가 짧고 사유의 밀도는 높다.

30
글쓰기가 단번에 완성되는 생산품이 아니라 점점 발전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글을 잘 쓸 수 없다.

31
내 글이 가닿아 마음을 움직여 행위를 불러오는 글이길 바라고 그 내통의 여정을 전달받고 싶다.

32
글쓰기 초보자에게는 부사가 독이다. 부사가 번성하면 주어와 동사로 이뤄진 주제 문장의 메시지가 묻힌다.

33
인물의 감정선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니 정서 감염도 빠르다

34
내 마음의 날씨가 계속 변한다

35
퇴고는 자신의 글로부터 유체 이탈하여 자신의 글에 대한 최초의 독자가 되어 보는 경험이다

36
힘이 들어간 첫 단락은 사족인 경우가 많다.

37
“작가로서 자의식을 가지세요. 나는 왜 무엇을 쓰고 싶은가,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무엇을 나누고 싶은가,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 물음을 어루만지는 동안 아마 계속 쓰게 될거예요.”

38
공사 현장에서 떨어뜨린 나사를 찾는 듯 막막하지만 반드시 있다는 심정으로 글의 문맥을 꽉 조여 주는 최적의 단어를 찾아 헤맨다.

39
사전이 어휘력을 기르기 위한 기초편 교재라면 나만의 단어집은 사유와 감각을 기르는 응용편 교재다

40
필력은 체력이다. 머리가 맑지 않으면 단어 하나 떠오르지 않고 사실 관계 확인도 귀찮아지니까 단단한 글이 나올 수 없다. 감정의 건강도 챙겨야 한다. 작가는 쓰는 사람이기 전에 듣는 사람이다. 심사가 복잡하면 왜곡해서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듣는 귀도 건강에서 온다.

글쓰기에 관심있는 분에게 꼭 추천한다. 글쓰기의 정석과 같은 교재 느낌은 아니지만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좋은 문장과 아닌 문장을 감별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이런 문장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더욱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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