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몰입하여 2시간 20분 가까이 되는 영화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들었던 생각은, “인생 영화라 할 수 있는 영화를 오늘 득템했구나!” 였다. 올해 본 영화 중 제일 재미있게 본, 핵소 고지에 대한 (나만의) 평을 가볍게 기록해두고자 한다.

핵소 고지의 스토리는 이렇다.

“제발… 한 명만 더…”
2차 세계대전 치열했던 핵소 고지에서 무기 없이 75명의 생명을 구한 기적의 전쟁 실화
비폭력주의자인 도스(앤드류 가필드)는 전쟁으로부터 조국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지 않아도 되는 의무병으로 육군에 자진 입대한다.

총을 들 수 없다는 이유로 필수 훈련 중 하나인 총기 훈련 마저 거부한 도스는 동료 병사들과 군 전체의 비난과 조롱을 받게 된다.

결국 군사재판까지 받게 되지만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도스에게 군 상부는 오키나와 전투에 총기 없이 의무병으로 참전할 것을 허락하는데…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영화는 “실화”임을 영화 도입부에 밝히면서 스토리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픽션 요소가 가미된 단순한 영화 시나리오가 아니라, 진짜 있었던 실화라는 점을 밝히며 스토리가 가지는 감동의 무게감을 더했다.

주인공 데스몬드 도스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이다. 종교적인 문제로 인해 무기를 손에 잡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에 입대해 국가를 위해 싸우고자 한다.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무병으로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입대를 했다. 당연히 모두가 비웃을 수 밖에 없다. 전쟁에 나가는데, 총도 없이 나가는 꼴이니 말이다. 더 심한 건 단체 특성상 소속감과 상호신뢰감이 매우 중요한 군대에서 다른 전우들이 데스몬드 도스를 ‘전우’로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내가 적에 의해 죽을 뻔 할 때, 과연 이 총도 없는 전우는 날 위해 싸워줄 수 있을것인가? 라는 의문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지만,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들은 왜 총을 잡는 걸 거부하는 걸까? 종교적인 신념이 국방의 의무라고 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신성한 의무보다 더 앞설 수 있는것인가? 등의 가벼운 질문과 의구심만을 품은 채 니나쳤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맞을까?
  • 개인의 확고한 가치관과 신념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 군대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도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을 보장해주는 게 맞는가?
  • 내가 만약 데스몬드 도스라면 전우와 상사의 왕따와 명령 복종 강요, 비아냥 등을 끝까지 참으며 나의 신념과 가치관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 내가 만약 데스몬드 도스의 전우이고 상사였다면 데스몬드 도스의 입장을 이해해 줄 수 있었을 것인가?

등에 대해 복합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느 하나 쉽게 답변이 나올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남자의 경우 의무적으로 군대를 복무해야 한다. 징병제다 보니 나의 신념이나 종교적인 이슈로 군대를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불가피하게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생겨나게 되고, 많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군대 대신 교도소에서 수 년 동안 복역을 한 뒤 나오게 된다. 이들 개인의 인권과 가치가, 국가의 의무를 앞서느냐 아니냐를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실이다.

군사재판까지 갔지만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중요시 생각하는 미국의 인권주의 덕분에, 데스몬드 도스는 총기를 소지하지 않아도 전쟁에 출전하게 된다. 바로 이 전쟁에서 데스몬드 도스의 개인적 신념이 빛을 발휘하게 된다. 적의 공격에 의해 모두가 후퇴하며 철수했을 때 데스몬드 도스는 핵소 고지에서 끝까지 남아 부상 병사를 고지 밑으로 옮겼다. 한 명 한 명 옮길 때마다

“주님, 부디 제가 한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한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일본군의 공격 속에서도 데스몬드 도스는 혼자 밤낮으로 부상 병사를 옮겨 총 75명 병사의 생명을 구했다. 무기에 의해 적을 죽일 수는 없지만,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겠다는 신념 하나로 만들어낸 업적이었던 셈이다. 총기도 없는 병사가 전쟁에서 어떤 공을 쌓을 수 있겠어? 총도 없는데 내가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쟤는 날 구해줄 수 있을까? 등의 질문을 하며 아무도 믿지 않았던 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어느 병사도 하지 못할 일을 해낸 것이다.

이 영화를 두고 일부 관람객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합리화하기 위한 종교적 영화다” 라고 말하며 영화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다. 그러나 어찌 됐든,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어느 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2차 세계대전에서 개인의 신념에 의해 75명의 병사를 구한 이야기는 실화이다. 이 스토리를 어떻게 해석할 지 보다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질법한 스토리가 실제로 존재했고, 그런 군인이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더 포커스되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종교적인 영화로 폄하한다면 데스몬드 도스라는 한 개인이 전쟁에서 보여준 숭고한 희생 정신조차도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