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예비군 6년차로 이제 예비군훈련과는 졸업이다.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예비군들이 훈련을 받는 곳은 안양에 위치한 ‘관동 예비군 훈련장’이다. 제대를 한 뒤 매년 1-2회씩 빠짐없이 방문하며 알게 모르게 정도 들어버린 곳이다. 또 매년 올 때마다 작년과 같은 모습에 이 곳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곳 처럼 느껴진다. 올해도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훈련장을 갔었다. 마지막 훈련인 만큼, 더 이상 오지 않을 이 곳에 안녕을 외치고 오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올해 내가 방문한 이 곳은 지금까지의 예비군 훈련장과는 전혀 딴판이 되어 있었다. 훈련 시설이나 어떤 인프라가 바뀐 것 보다는 훈련 시스템과 서비스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맙소사. 어쩔 수 없이 끌려가듯 입소하는 이 곳에서 ‘서비스’ 정신을 느끼는 날이 오다니. 믿기지 않았지만 확실히 달라져있었다. 어떤 면에서 내가 ‘다름’을 느꼈는지 기록해두고자 한다.

방탄 앞 뒤의 훈련번호 찍찍이

예비군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최근에는 ‘자율 참여형 분대’ 로 예비군 훈련이 운영된다. 10명 단위가 1개의 분대가 되어 훈련장을 돌아다니면서 합격/불합격 판정을 받고, 모든 코스에서 합격을 받게 되면 조기 퇴소를 하게 된다. 훈련을 원활하게 통제하기 위해 각각의 분대는 고유 번호가 있다. 예를 들면 3반에서 2번째 분대의 번호는 32번이고, 만약 내가 분대원 10명 중 5번째라면 내 훈련번호는 “32-5” 가 된다. 지금까지는 이 훈련번호를 목걸이 명찰 방식으로 걸고 다녔었다. 하지만 이 ‘명찰’이 정말 불편했었다.

불편한 이유로,

  • 멀리서는 어떤 분이 우리 분대인지 전혀 분간이 안된다. 한 번 입소하게 되면 600명 넘는 사람이 훈련장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분대원을 찾는 것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다. 예를 들면 점심 먹고 쉬다가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 앞에서 모이자고 했다고 치자. 만남의 장소가 훈련장 안에 많지 않다보니 다른 분대들의 만남의 장소와 겹칠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 다른 분대원들과 섞여 우리 분대원을 찾기 힘들다. 오전에 잠깐 익힌 얼굴만으로 분대는 분대원을 찾아야 하고, 분대원은 분대를 찾아야 한다.
  • 훈련 도중, 한 번 분대를 잃어버리면 다른 분들 명찰만 뚫어지게 보면서 분대 찾기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명찰은 뒤집어 지는 경우도 많고 명찰이 귀찮다며 착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고난을 겪게 된다.

이런 불편함이 이번 예비군 훈련때는 없었다. 각 분대를 대표하는 배경 색상으로 훈련 번호를 출력한 뒤 방탄 앞, 뒤로 찍찍이 형태로 붙일 수 있게 해두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서는 내 앞의 분대원이 몇 번인지 방탄만 보고도 알 수 있고(방탄은 훈련 시 꼭 쓰고 있어야 한다), 멀리서 봤을 때는 번호표 색상으로 우리 분대원인지 아닌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 분대 색상이 빨간색이라면 빨간색 번호표가 붙어있는 방탄의 예비군은 우리 분대고, 만약 파란색이면 다른 분대원임을 아는 식이었다. 몇 년 동안 예비군 훈련을 하면서 불편함을 겪었지만 군대 문화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감수했었다. 건의할 생각마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야 바뀌게 된 것이다. 작은 색상이 들어간 번호표지만 예비군 훈련생들이 어떤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혜안이었다.

도시락 생수가 ‘얼음 생수병’

예비군 훈련을 하게 되면 점심으로 훈련장에 있는 식당을 이용하거나 도시락을 이용하게 된다. 2년 전까지만 해도 훈련장 안에 있는 식당에서 준비한 식사를 점심으로 먹었으나 지금은 도시락으로 점심이 대체되고 있다. 생각보다 양도 푸짐하고 맛있어서 이전 식당의 메뉴보다는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이번 훈련 때도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으나 마지막 물 배급에서 미친듯이 감동을 했었다. 일반 생수가 아니라 ‘얼음 생수병’을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그냥 미지근한 생수병을 줬어도 아무 불평이 없었을것이다. 도시락업체에서 주는 도시락인데 상온에 있는 생수를 주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업체는 생수를 전부 냉동실에 넣어 얼렸고 갓 꺼낸 ‘얼음 생수병’을 예비군 훈련생들에게 지급했다. 그리고 예비군들은 그 얼음 생수병을 들고 다니면서 오후 훈련 내내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일반 생수병과 얼음 생수병, 작은 차이지만 사용자(예비군 훈련생)를 만족시키는 데에는 큰 차이가 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얼음 생수병’은 도시락 업체가 결정한 내용이든, 부대가 요청한 내용이든 ‘급식’을 행정의 하나로 보지 않고 ‘서비스’로 봤다는 점에서 큰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지금 각 훈련장의 대기 인원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지금은 ‘자율 참여형 분대’로 바뀌면서 분대 단위로 훈련장을 옮겨 다니면서 훈련을 모두 클리어해야 끝이 난다. 문제는, 눈치 게임이 장난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 몰리지 않는 훈련장으로 요령있게(!) 가야 빨리 하나씩 끝내고 조기 퇴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다른 훈련장 인원을 염탐하려고 미리 몇 명이 가본 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갔었는데 거의 모든 분대가 이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각 훈련장 대기 인원을 동선 중간 중간에 보여주면 어떨까?”

이 아이디어가 올해 드디어 실천되고 있었다. 각 훈련장의 조교들이 대기인원을 체크한 뒤 동선 중간에 있는 ‘각 훈련장 대기 인원’ 게시판에 1시간 단위로 업데이트를 해두고 있었다. 이로 인해 한 훈련장으로 예비군 훈련생들이 몰리는 현상을 줄일 수 있었고 각 훈련장이 적당한 인원으로 병목현상 없이 빠르게 훈련이 진행될 수 있었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각 놀이기구 대기 시간을 동선 중간 중간 알려주는 것과 같은 서비스인셈이다.


올해 예비군 훈련을 하면서 예비군 훈련생을 ‘사용자’로 접근해서 사용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깊게 고민해본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더운 날씨와 빡세진(!) 훈련으로 인해 몸은 고됐지만 군대라는 특수 조직이 사용자를 위해 디테일한 것들을 매만지고 있다는 사실에 신선한 인사이트를 얻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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